274m 떨어진 두 아파트가 2.70억 차이났다 — 사가정역 임장 기록

지도로는 셋 다 «사가정역 도보 12분»이었다

예산 5억으로 서울에 첫 집을 사려고 후보 단지를 추리는 중이다. 스프레드시트에서는 사가정역 아파트 세 곳이 거의 같은 조건으로 보였다. 역까지 도보 12분, 같은 상권, 강남까지 40분. 숫자만 놓고 보면 셋을 가를 근거가 없었다.

그런데 시세는 두 배 가까이 갈려 있었다. 왜 그런지 지도로는 알 수 없어서, 직접 걸었다.

후보로 놓은 사가정역 아파트 세 곳을 도보로 이어서 봤다.

용마한신에서 한양수자인 사가정파크까지 274m, 거기서 사가정 센트럴 아이파크까지 1,289m.

다 합쳐 도보 50분 거리다. 반나절이면 충분한 코스였다.

사가정역 아파트 세 곳, 같은 전용 60㎡인데 6.10억 · 8.80억 · 11.17억

먼저 숫자부터. 평형이 다르면 비교가 섞이니까 전용 60㎡ 하나로 통일해서 국토부 실거래가를 뽑았다. 2025년 8월부터 2026년 8월까지의 중위값이다.

사가정역 아파트 전용 60㎡ 실거래가 비교 - 1998년 구축과 2019년, 2020년 신축
같은 사가정역, 같은 전용 60㎡인데 5.07억이 갈렸다. 연식만이 아니라 «경사»가 변수였다.
단지준공지형전용 60㎡
용마한신 2차1998년언덕6.10억
한양수자인 사가정파크2019년언덕8.80억
사가정 센트럴 아이파크2020년평지11.17억

용마한신은 1차(1990년·565세대)와 2차(1998년·174세대)가 나뉘어 있다. 전용 60㎡가 있는 건 2차라

표에는 2차를 넣었다. 아래 주차 이야기는 세대수가 큰 1차 기준이다.

구축과 신축 사이에 2.70억. 여기까지는 예상했다. 서울에서 신축 프리미엄이 크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놀란 건 그다음이다. 2019년 신축과 2020년 신축 사이가 또 2.37억 벌어져 있었다.

준공 1년 차이에 이 금액이 갈릴 이유가 뭔지, 그게 오늘 걸어본 이유가 됐다.

사가정역 아파트 중 2019년 준공 신축 단지 정문
2019년 준공 단지 정문. 구축 단지에서 274m, 걸어서 4분 거리다.

사가정역 아파트의 «도보 12분»은 같은 12분이 아니었다

용마한신에서 사가정역까지 12분. 센트럴 아이파크에서도 12분. 지도 앱에서는 같은 숫자다.

직접 걸어보니 전혀 달랐다.

사가정역까지 걸어가는 오르막 보행로와 용마산
용마한신에서 사가정역으로 내려가는 길. 오르막이고 뒤로 용마산이 보인다.

용마한신 쪽은 오르막이다. 장 봐서 올라오는 길, 여름에 땀 흘리며 오르는 길이다. 센트럴 아이파크 쪽은 평지다. 같은 12분인데 몸이 기억하는 12분이 다르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었다.

용마터널 250m 앞 표지판, 터널길이 2562m 유료도로
사가정역 아파트 단지 앞 용마터널 표지판. 250m 앞, 터널길이 2,562m, 유료도로다.

용마터널이 250m 앞이다. 표지판에 「유료도로 · 터널길이 2,562m」라고 적혀 있다.

유료도로 진입로라는 건, 이 동네를 목적지로 하지 않는 차들이 상시로 지나간다는 뜻이다. 보행로 바로 옆으로 차가 계속 지나갔다.

이건 어떤 데이터에도 안 나온다. 나는 그동안 「역까지 도보 12분」을 하나의 숫자로 다뤘는데, 그 12분의 질이 가격에 이미 반영돼 있었다.

주차 0.24대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 기준으로 용마한신 1차는 565세대에 주차 134면이다. 세대당 0.24대. 숫자로만 보면 감이 안 왔다.

1990년 준공 구축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이중주차
세대당 주차 0.24대인 구축 단지의 지하주차장. 통로를 가로막은 이중주차다.

지하주차장에 내려가니 통로를 가로막은 이중주차가 있었다. 층고가 낮고 배관이 그대로 노출돼 있어서, 주차장이라기보다 창고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같은 공간에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섞여 있었다.

바닥에는 거주자 전용 스티커가 붙은 차들이 서 있었다. 배정제라는 뜻이다. 차가 두 대면 이 단지는 후보에서 빠진다.

참고로 2019년 신축 단지는 497세대에 584면, 세대당 1.17대다.

지상에도 주차 공간이 있고 전기차 충전기도 갖춰져 있었다. 관리가 나쁜 단지는 아니었다.

다만 1990년에 설계된 주차 수요와 2026년의 주차 수요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내가 데이터를 잘못 읽고 있었다

집에 와서 사가정역 아파트를 포함한 후보 단지들의 20년치 실거래가를 다시 봤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상승장 한 번과 하락장 두 번이 들어 있는 구간이다.

두 가지를 계산했다.

  • 상승 탄력 — 2014년 바닥 대비 2021년 전고점이 몇 배가 됐나
  • 하락장 낙폭 — 전고점 대비 저점까지 몇 % 빠졌나
상승 탄력과 하락장 낙폭으로 본 후보 단지 4분면
상승 탄력과 하락장 낙폭으로 본 후보 단지 4분면. 낙폭만 보면 판단이 뒤집힌다.

여기서 내가 틀렸던 게 드러났다.

나는 그동안 「낙폭이 작으면 안전한 단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낙폭 순으로 후보를 정렬해 놓고 있었다.

그 기준으로 보면 낙폭 -25.0%인 단지 하나가 후보 중위값(-31.2%)보다 훨씬 양호해서, 「하방이 튼튼한 단지」로 상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같은 단지의 2023년 대비 현재 가격이 +1.1%였다. 3년 동안 제자리다.

낙폭이 작았던 건 방어력이 아니었다. 애초에 안 올랐다가 안 빠진 것이었다. 2022~23년엔 거의 모든 아파트가 같이 빠졌으니 하락 자체는 단지의 문제가 아니다. 회복장에서 못 따라온 게 문제다. 그건 시장 탓이 아니라 살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비교해보면 이게 선명해진다. 오늘 본 용마한신 44㎡는 낙폭이 -35.0%로 후보 중 가장 컸다. 2021년 5.85억이던 게 2023년 상반기 3.80억까지 빠졌다. 언덕·터널·주차 0.24대는 하락장에 먼저 버려지는 조건이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런데 2023년 대비 현재가 +30.3%다. 후보 중 회복이 가장 빠르다.

잘 빠지고 잘 오르는 집이었다. 이건 나쁜 게 아니라 성격이 다른 것이고, 사는 시점이 전부라는 뜻이다.

하방은 «%»가 아니라 «원»으로 읽어야 했다

하나 더 고쳤다. 낙폭을 퍼센트로만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낙폭 -35%여도 저점이 3.80억이면, 다시 하락장이 와도 내 예산 5억 안에서 잡히는 집이다. 낙폭 -11%여도 저점이 5.22억이면 그때도 예산 밖이다.

집을 이미 가진 사람에게 하방은 「내가 버틸 수 있는가」다. 아직 못 산 나에게 하방은 「내가 살 수 있는 데까지 내려오는가」다. 같은 숫자를 정반대로 읽어야 한다. 이걸 이제야 정리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했다

용마한신을 후보에서 빼지는 않았다. 대신 성격을 다시 규정했다.

이 단지는 「안정적인 집」이 아니라 「타이밍을 봐야 하는 집」이다. 상승장 초입에 사면 회복 탄력이 가장 좋고, 늦게 사면 낙폭을 그대로 맞는다. 현장에서 확인한 호가는 59타입 6억 4,500만원이었다. 내 예산 5억으로는 44㎡가 현실적인 선이다.

그리고 후보 정렬 기준을 바꿨다. 낙폭 단독으로 줄 세우던 걸 낙폭 + 회복률 두 축으로 바꿨다. 이 두 개를 같이 보지 않으면, 아무도 안 사는 단지를 「안전한 단지」로 착각한다.

정리

  • 사가정역 아파트 세 곳은 같은 전용 60㎡인데 6.10억 · 8.80억 · 11.17억이었다. 구축↔신축 2.70억, 신축↔신축 2.37억.
  • 「역까지 도보 12분」은 같은 12분이 아니었다. 오르막인지 평지인지, 유료도로 진입로가 옆에 있는지가 가격에 이미 들어가 있었다.
  • 세대당 주차 0.24대는 통로를 막은 이중주차로 보였다. 차 두 대면 이 단지는 후보에서 빠진다.
  • 낙폭이 작다고 안전한 게 아니다. 회복장에서 못 오른 단지는 낙폭이 작아도 살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 무주택자에게 하방은 「버틸 수 있는가」가 아니라 「살 수 있는 데까지 오는가」다.

지도와 스프레드시트는 가설이고, 검증은 발로 한다. 오늘은 그걸 2.70억짜리 사례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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