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구매 담당자 하루 일과 공개 — 8년차가 서울 본사에서 실제로 하는 일

전략구매 담당자 하루 일과 대공개

구매팀이 뭐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건 사는 팀 아니에요?” — 틀린 말은 아닌데, 딱 그 정도로만 알고 있으면 실제로 들어왔을 때 당황한다. 나도 그랬다.

입사해서 처음 몇 년은 발주에 납기에 재고에 치이면서 버텼다. 그게 8년 전 얘기다.

그리고 2년 전, 우리 회사는 구매 조직을 둘로 쪼갰다.

조달구매는 공장으로 내려갔다. 실물 발주, 납기 관리, 재고 확인 — 생산 현장에 붙어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업무들이다.

전략구매는 서울 본사에 남았다. 업체 선정, 단가 협상, 계약 관리, 업체 육성 —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공급망을 설계하는 역할이다.

나는 서울 전략구매팀에 있다. 오늘은 내 하루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간순으로 써본다. 구매직무를 준비 중이거나, 전략구매가 뭔지 궁금한 분들한테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정보가 됐으면 한다.


전략구매 vs 조달구매 — 뭐가 다른가

본문 들어가기 전에 이걸 먼저 짚고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구분전략구매조달구매
위치서울 본사공장
핵심 역할업체 선정, 단가 협상, 계약, 업체 관리발주, 납기 추적, 재고 관리
시간 관점중장기(분기·연간)단기(주·월 단위)
주요 상대업체 영업팀, 내부 마케팅·개발팀업체 물류팀, 공장 생산팀
SAP 주요 기능계약 관리, 가격 조건 등록, 공급업체 평가발주서 생성, 입고 처리, 재고 조회

이 구조가 생기기 전엔 한 팀이 다 했다. 그러다 보니 급한 발주 대응하면서 동시에 업체 협상도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둘로 나누고 나서는 각자 본인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협상 퀄리티가 올라갔다고 느낀다.


08:30 — 출근하자마자 SAP과 메일함

자리에 앉으면 제일 먼저 두 가지를 켠다. SAP과 메일함.

SAP에서는 전날 등록된 계약 조건, 가격 변경 이력, 업체 평가 데이터를 확인한다. 조달팀이 공장에서 발주를 내려면 우리가 SAP에 계약 단가와 조건을 먼저 등록해 놓아야 한다. 이게 빠져 있으면 공장에서 발주 자체가 안 된다. 그래서 신규 업체 선정이나 단가 변경이 있을 때는 SAP 등록이 협상만큼 중요한 일이다.

메일함에서는 세 가지를 먼저 본다.

  • 업체에서 온 견적서·계약 관련 회신
  • 개발팀·마케팅팀에서 온 신규 자재 문의
  • 조달팀(공장)에서 올라온 납기 이슈 또는 업체 클레임

조달팀이 공장에 있다 보니, 현장에서 발생한 이슈가 아침에 메일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납기 지연, 품질 불량, 업체 대응 불만 — 이게 전략구매 팀으로 에스컬레이션되면 우리가 해당 업체와 직접 협의한다.

이 루틴에 보통 20~30분 걸린다. 여기서 오늘 하루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09:30 — 업체 선정 또는 RFQ 진행

전략구매의 핵심 업무 중 하나는 신규 업체 발굴과 선정이다.

신규 자재가 생기거나, 기존 업체를 교체해야 할 때 RFQ(Request for Quotation — 견적 요청서)를 여러 업체에 보낸다. 이게 단순히 “얼마예요?”를 묻는 게 아니다.

RFQ에는 보통 이런 내용이 들어간다.

  • 자재 스펙 (소재, 규격, 인쇄 조건 등)
  • 예상 발주 수량 (연간·분기 기준)
  • 납기 요건
  • 품질 기준 및 인증 요구사항
  • 평가 기준 안내 (단가만이 아님을 명시)

그리고 들어온 견적을 단가만 줄 세우지 않는다. 단가, 납기 안정성, 품질 이력, 회사 규모(리스크 분산 관점), 장기 협력 가능성까지 종합해서 내부 평가표를 만든다.

이 평가표가 나중에 업체 선정 보고서의 근거가 된다. “왜 이 업체를 골랐냐”는 질문에 데이터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11:00 — 단가 협상 또는 계약 조건 협의

일주일에 2~3번은 업체와 협상 자리가 잡힌다. 대면이거나 화상이거나.

전략구매에서 협상은 크게 두 가지다.

① 연간 단가 협상 연초나 분기 초에 진행하는 정기 협상이다. 업체는 원자재 가격 상승을 근거로 인상을 요청하고, 우리는 물량 약속이나 결제 조건 개선을 카드로 인하 또는 동결을 요청한다. 협상 전에 원자재 지수(펄프, 필름, 알루미늄 등)를 직접 뽑아서 업체 논리가 맞는지 검토하는 게 기본이다.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대화해야 한다.

② 신규 자재 초기 단가 세팅 신제품 출시 때 처음 만드는 포장재는 단가 기준이 없다. 이때가 사실 가장 중요하다. 초기에 단가를 어디에 세팅하느냐가 이후 몇 년의 원가 구조를 결정한다. 처음 잡힌 단가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협상은 솔직히 처음엔 어색했다. 상대가 연배 있는 영업이사인 경우도 있고, 나보다 경력이 훨씬 긴 분들도 많다. 근데 8년 하다 보니 패턴이 보인다. 이건 다음 글에서 따로 써볼 생각이다.


12:00 — 점심시간, 근데 업체 전화가 온다

솔직히 쓴다.

점심시간에 업체 영업담당자 전화 꽤 온다. 상대방도 이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까. 신규 업체나 관계 초기인 곳은 어지간하면 받게 된다. 피곤한 부분 중 하나다.


13:30 — 내부 협업: 개발팀, 마케팅, 조달팀

오후는 내부 소통이 몰린다.

개발팀: 신제품 포장재 스펙 확정 요청. “이 소재로 바꾸면 단가 얼마나 바뀌어?” 같은 질문이 많이 온다. 스펙 변경 하나가 단가에 직결되니까 우리가 기준을 잡아줘야 한다.

마케팅팀: 단순한 리뉴얼 일정 조율보다 훨씬 깊이 엮여 있다. 마케팅팀은 시장 트렌드와 고객 반응을 바탕으로 “이런 용기가 필요하다”는 방향을 가져온다. 예를 들어 최근엔 용기 개발과 신규 패키지 도입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됐는데, 마케팅이 콘셉트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전략구매가 그 조건에 맞는 업체를 소싱하고, 샘플 단계부터 소재 검토·스펙 협의·초기 단가 세팅까지 함께 들어간다. 기능 간 협업이 가장 밀도 있게 일어나는 접점이다.

조달팀(공장): 공장에서 이슈가 올라오면 우리가 해당 업체에 직접 대응한다. 납기 지연이면 원인 파악 후 대책을 요구하고, 품질 이슈면 클레임 처리와 재발 방지를 업체와 협의한다.

이 세 방향이 한꺼번에 오는 날이 있다. 주로 신제품 출시 직전이나 분기 말.


15:00 — 업체 관리 및 SAP 계약 등록

협상이 끝난 건은 SAP에 계약 조건으로 등록해야 공장에서 발주할 수 있다.

업체 코드, 자재 코드, 계약 단가, 유효 기간, 결제 조건 — 이걸 하나하나 SAP에 입력하는 작업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틀리면 공장 발주가 막히거나 잘못된 단가로 발주가 나간다. 숫자 하나 틀리는 게 나중에 큰 문제가 된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업체 관리 측면에서는 분기마다 업체 평가도 한다. 납기 준수율, 품질 합격률, 클레임 발생 건수, 가격 경쟁력 — 이 지표들을 취합해서 업체별 등급을 매긴다. 평가 결과는 다음 협상 때 카드가 되기도 하고, 업체 교체 결정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17:00 — 퇴근 전 마무리 루틴

퇴근 전 20~30분은 내일 준비다.

  • 오늘 진행 중인 협상 건 상태 업데이트
  • 업체에 보낸 RFQ 중 미회신 건 리마인드
  • SAP 계약 등록 누락 건 확인
  • 조달팀에서 올라온 이슈 중 미처리 건 메모

이 루틴을 안 하고 퇴근하면 다음 날 아침이 피곤해진다. 전략구매는 여러 건이 동시에 돌아가기 때문에 진행 상황을 머릿속에만 담아두면 반드시 빠지는 게 생긴다.


8년 해보니 — 전략구매 직무가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

솔직하게 쓴다.

이런 사람한테 잘 맞는다

  • 협상·설득이 싫지 않은 사람 (협상은 피할 수 없다)
  • 데이터로 논리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 (근거 없는 협상은 안 통한다)
  • 여러 부서를 연결하는 조율 역할에 스트레스 덜 받는 사람
  • 단기 성과보다 구조를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

이런 사람한테는 힘들 수 있다

  • 내 성과가 눈에 바로 보여야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 (원가절감은 숫자로 나오지만 묻히는 경우가 많다)
  • 갈등 상황 자체가 너무 힘든 사람 (클레임, 업체 협상, 내부 조율 모두 갈등을 수반한다)
  • 혼자 집중해서 일하는 환경을 선호하는 사람 (소통이 업무의 절반이다)

나는? 협상이 재밌다. 데이터 뽑아서 논리 만들고 상대를 설득하는 게 나한테 맞는다. 티 안 나는 게 가끔 아쉽긴 한데, 내가 세팅한 단가 구조가 원가율 0.x% 내려가는 걸 보면 그게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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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회사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는 포함하지 않으며, 업무 수치는 예시용으로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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