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꽤 읽는 편이다.
읽다가 좋은 문장이 나오면 밑줄을 긋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유튜브에서 귀감이 될 만한 영상을 보면 ‘나중에 볼 동영상’에 저장한다. 인상 깊은 아티클은 링크를 캡처해둔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장한 걸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거의 없다.
저장하는 순간 이미 “언젠간 보겠지” 하고 마음이 놓여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언젠가’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며칠만 지나도 내가 뭘 저장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정작 그 지식이 필요한 순간 — 글을 쓸 때, 결정을 내려야 할 때 — 머릿속엔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하는 답답함만 남곤 했다.
애써 모은 지식이 내 것이 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리는 것. 나는 이게 오랫동안 아쉬웠다.
흩어진 지식은 왜 내 것이 안 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명확했다.
저장은 ‘수집’일 뿐, ‘소화’가 아니다.
사진첩에 쌓인 밑줄 사진 수백 장은 그냥 파일 더미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내 생각과도 붙어 있지 않다. 뇌는 연결된 것만 기억한다. 그런데 나는 낱개로 던져만 놓고 있었던 거다.
게다가 사람 뇌는 저장 장치로는 형편없다. 어제 점심 메뉴도 가물가물한데, 반 년 전 읽은 책의 핵심 문장을 정확한 맥락과 함께 꺼내라니. 애초에 무리였다.
여기서 내가 만난 개념이 바로 ‘세컨드 브레인(Second Brain)’이다.
세컨드 브레인이란 무엇인가
세컨드 브레인은 말 그대로 ‘두 번째 뇌’다.
핵심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뇌는 기억하는 데 쓰지 말고 생각하는 데 쓰자. 저장·기록·연결은 뇌 바깥의 시스템에 맡기자. 그러면 뇌는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내 머리 밖에 ‘검색 가능하고 서로 연결된 나만의 지식 창고’를 하나 짓는 것이다.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창고.
말은 좋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번 실패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노트 앱에 열심히 자료를 모아봤지만, 결국 ‘더 크고 정리 안 된 사진첩’이 됐을 뿐이다. 저장은 했는데 연결과 재활용이 안 됐다. 창고는 지었는데, 물건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연결과 정리’를 결국 사람이 손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귀찮은 일을 며칠 하다 지쳐 나가떨어진다. 세상의 수많은 지식 관리 앱이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유지·관리의 부담이 그 가치보다 빨리 커진다.
그런데 최근, 이 판을 바꾸는 조합을 발견했다. 바로 옵시디언 + 클로드(AI)다.
옵시디언 + 클로드 = 살아있는 위키
이 아이디어의 뿌리는 안드레 카파시(Andrej Karpathy)라는 사람이 제안한 ‘LLM 위키(LLM Wiki)’라는 개념이다.
이름이 낯설 수 있는데, 알고 보면 대단한 사람이다. 챗GPT를 만든 오픈AI(OpenAI)의 창립 멤버였고, 이후 테슬라에서 자율주행 AI를 총괄했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테슬라가 스스로 운전하는 기술’, 그 눈과 두뇌를 만든 팀의 수장이었던 사람이다. 지금은 AI 교육 회사를 차려 복잡한 AI를 쉽게 풀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사람이 “지식을 이렇게 관리하니 좋더라” 하고 내놓은 방법이니, 한번 믿고 따라가 볼 만하지 않은가.
핵심은 이렇다. 자료를 그냥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AI에게 통째로 뒤지게 하는 게 아니라, AI가 자료를 읽고 한 번 ‘소화’해서, 서로 연결된 위키 문서로 정리해두는 것. 그리고 새 자료가 들어올 때마다 AI가 기존 위키를 갱신한다. 지식이 사라지지 않고 눈덩이처럼 쌓인다.
역할 분담이 기가 막히다.
- 나는 좋은 자료를 고르고,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잘하는 일)
- 클로드는 읽고, 요약하고, 연결하고, 정리한다. (그 지겨운 관리 노동)
- 옵시디언은 그렇게 정리된 지식을 눈으로 보고 탐색하는 창이다.
내가 몇 년 전 포기했던 그 ‘연결과 정리’의 노동을, 이제 AI가 지치지도 않고 대신 해준다. 이게 결정적인 차이다.
실제로 해봤다 — 유튜브 영상 하나가 지식이 되기까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직접 해봤다.
먼저 내 지식 창고(옵시디언)를 성격에 따라 세 칸으로 나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서랍을 세 개 만든 셈이다.
- 원본 서랍: 내가 캡처한 자료를 손대지 않고 그대로 넣어두는 곳
- 정리 서랍: AI가 그 자료를 읽고 정리·연결해주는, 진짜 내 위키가 되는 곳
- 결과물 서랍: 정리된 지식을 재료로 뽑아낸 블로그 글 같은 결과물 (지금 이 글처럼)
그리고 세컨드 브레인을 다룬 유튜브 영상 하나를 첫 번째 ‘원본 서랍’에 넣고, 클로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영상 읽고 정리 좀 해줘.”
그랬더니 클로드가 영상을 읽고는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이걸 왜 저장하셨어요? 지금 하는 일과 어떻게 연결되죠? 이걸로 뭘 해보고 싶으세요?”
이 질문이 참 좋았다. 그냥 요약본만 툭 던지는 게 아니라, 그 지식을 ‘내 상황’에 맞게 꽂아주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내 대답을 듣고 클로드는 영상 하나를 여러 개의 연결된 메모로 쪼개 정리했다. 핵심 개념 정리(세컨드 브레인이란, LLM 위키란), 영상에 나온 인물·도구 정리, 그리고 “이걸 블로그 시리즈로 써보면 어때요?”라는 기획 메모까지. 각 메모는 서로 관련된 것끼리 링크로 이어졌다.
압권은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쌓인 메모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됐는지 지도처럼 한눈에 그려봤더니, ‘LLM 위키’라는 개념이 모든 메모를 잇는 중심에 딱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 짠 게 아니라, 쌓인 지식이 스스로 자기 모양을 보여준 것이다. 흩어져 있던 점들이 별자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직접 해보니 — 솔직한 후기
환상을 심어주긴 싫으니 솔직히 적는다.
세팅에는 품이 든다. 폴더 구조를 잡고, AI에게 규칙을 알려주고, 첫 자료를 넣어보는 초반 과정은 분명 귀찮다. 이건 ‘설치하면 끝’인 앱이 아니라, 내가 조금씩 길들여가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건 자료를 꾸준히 넣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다. 애초에 모으는 습관이 없다면 빈 창고일 뿐이다.
하지만 나처럼 “쌓아두고 안 보는 게 늘 아쉬웠던” 사람에겐 이야기가 다르다. 이제 내가 저장한 지식은 흩어진 파일이 아니라, 다시 꺼내 쓸 수 있고 서로 대화하는 지식이 된다. 심지어 이 블로그 글도 그 위키에서 재료를 꺼내 쓴 결과물이다.
그래서 나는
나는 이걸 계속 기록하기로 했다.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며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늘 발목을 잡던 건 “떠오르는 생각과 모은 지식이 산발적이라 콘텐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컨드 브레인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노린다. 흩어진 입력을, 꺼내 쓸 수 있는 자산으로 바꾸는 일.
그래서 이걸 시리즈로 남긴다. 평범한 직장인이 AI와 함께 자기만의 ‘두 번째 뇌’를 지어가는 과정을. 다음 화에서는 실제로 옵시디언 볼트를 어떻게 세 칸으로 설계했는지, 그 구조를 구체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혹시 당신도 저장만 하고 잊어버린 지식이 아까웠다면, 이 시리즈가 작은 힌트가 되면 좋겠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은 내 지식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