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가 인하 협상, 인상 때는 며칠 만에 됐는데 이번엔 몇 주가 걸렸다

단가 인하 협상을 준비하면서 스스로도 좀 웃겼다. 몇 주 전엔 “단가 올려달라”는 공급업체 요청서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내가 “다시 내려달라”는 요청서를 들고 미팅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까.

지난 글에서 썼듯이, 호르무즈 해협 긴장으로 원유가·해상운임이 오르면서 우리 포장재 원료를 대는 공급업체가 단가 인상을 요청했고, 나는 근거자료를 검토한 뒤 협상 없이 전액 수용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반대 상황이 됐다. 원료비 원가의 기초가 되는 나프타 가격이 눈에 띄게 빠진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왜 다시 미팅을 잡았나 — 나프타 가격이 근거였다

포장재 원료는 결국 나프타 기반 석유화학 제품이라, 나프타 가격이 오르내리면 시차를 두고 원료 단가에도 반영된다는 게 우리 쪽 업계 상식이다. 그래서 나는 나프타 가격 추이를 계속 체크하고 있었는데, 국내 석유화학 업계 보도를 보니 6월 25일 나프타 가격이 배럴당 66달러까지 떨어졌다는 걸 확인했다. 인상 요청 당시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치솟았던 걸 감안하면, 거의 종전 수준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인상 근거가 됐던 원가가 이만큼 빠졌으니, 인하도 반영해달라”는 게 내가 준비한 단가 인하 협상의 논리였다. 이상한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상 때 근거자료를 받아서 검토하고 수용했던 것처럼, 인하 때도 똑같은 원칙을 적용하는 것뿐이었다.

시점나프타 가격(배럴당)상황
인상 요청 당시 (6월 초중순)약 100달러 안팎호르무즈 긴장 최고조, 인상 근거
6월 25일 (내가 미팅을 준비하기 시작한 시점)66달러저점, 거의 종전 수준
7월 10일79달러반등 시작
7월 13일 (미팅 직전)82달러저점 대비 24.2% 상승

이 표를 보면 알겠지만, 내가 미팅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나프타 가격은 다시 오르고 있었다. 이게 나중에 협상 테이블에서 꽤 뼈아픈 변수가 됐다.

단가 인하 협상 당일 — 공급업체는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미팅 전 나는 단가 인하 협상을 위해 세 가지를 준비했다. 나프타 가격 추이 자료, 인상 당시 계약서에 명시된 “원가 연동” 조항, 그리고 우리 쪽 원가 영향 시뮬레이션(인하분을 반영했을 때 우리가 절감되는 금액).

공급업체 반응은 예상보다 방어적이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1. 이미 높은 단가에 원료를 매입해둔 재고가 있다. 인상된 단가 기준으로 이미 몇 달치 원료를 사놓은 상태라, 지금 당장 판매 단가를 내리면 자기들이 역마진을 본다는 논리였다.
  2. 하락이 ‘반영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나프타가 66달러까지 간 건 6월 25일 단 하루의 저점이었고, 그 뒤로 등락이 컸다는 걸 근거로 들었다. “저점 하루 찍었다고 단가를 내리면, 다음 달에 다시 오르면 또 올려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때도 순순히 받아주실 겁니까”라는 반문도 나왔다.
  3. 미팅 시점엔 이미 재상승 국면이었다. 7월 들어 호르무즈 정세가 다시 불안해지면서 나프타가 82달러까지 반등한 뉴스를, 공급업체 담당자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시점 기준으로 보면 인하 근거가 이미 약해지고 있다”는 게 그쪽 논리였다.

솔직히 세 번째 이유는 나도 반박이 쉽지 않았다. 내가 근거로 들고 간 저점(66달러)과, 미팅 당일 실제 가격(82달러) 사이에 이미 간극이 벌어져 있었으니까.

인상은 하루, 인하는 계약 구조 싸움

단가 인하 협상을 겪으면서 확실히 느낀 게 있다. 인상과 인하는 애초에 협상의 무게 자체가 다르다.

구분인상 요청 (지난 글)인하 요청 (이번 글)
요청 주체공급업체우리(구매팀)
근거 제시 속도인상 다음 날 바로 근거자료 제출우리가 먼저 자료 준비해서 요청
상대방 태도방어할 이유 없음(원가 올랐으니 당연)방어할 이유 많음(재고·불확실성·타이밍)
결론까지 걸린 시간며칠몇 주
결과요청분 전액 반영요청분 일부만 반영

공급업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원가가 오르면 즉시 반영해야 다음 매입에서 손해를 안 보지만, 원가가 내려간 걸 즉시 반영하면 이미 비싸게 사둔 재고에서 손해를 보는 구조다. 원가 상승은 순방향, 원가 하락 반영은 역방향 — 원래 이쪽이 더 무겁게 작동한다는 걸 이번에 직접 겪었다.

단가 인하 협상 결과 — 전액이 아니라 일부

결과부터 말하면, 요청한 인하분 전액은 관철하지 못했다. 공급업체는 재고 소진 시점(계약상 다음 분기 초)부터 인하분의 일부를 우선 반영하고, 이후 나프타 가격 추이를 보면서 추가로 재검토하기로 절충했다. 전액 원상복귀는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못 얻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단가 인하 협상에서 얻은 진짜 소득은 따로 있다. 이번 계약 갱신 시점에 원가 하락 시에도 일정 주기(분기 단위)로 자동 재검토하는 조항을 넣어달라고 요청했고, 공급업체도 이 부분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다음번엔 이렇게 매번 근거자료를 들고 미팅을 새로 잡을 필요 없이, 계약서 안에서 정기적으로 검토되는 구조를 만들어두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8년차로서 남긴 교훈

인상 요청을 받았을 땐 “근거만 맞으면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그 원칙이 반대 방향으로도 똑같이 작동하길 기대한 건 내 착각이었다. 원가 상승분은 공급업체가 먼저 챙기고, 원가 하락분은 우리가 먼저 챙겨야 반영된다는 게 이번에 확인한 현실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인상 요청을 수용할 때, 그 자리에서 “원가 하락 시 재검토” 조항을 같이 넣어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이미 오른 뒤에 따로 단가 인하 협상 미팅을 잡아 되돌려달라고 하는 것보다, 계약 조건 자체에 양방향 연동 구조를 심어두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걸 이번에 몇 주를 써가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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