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차 구매담당자가 직접 AI 자동화 제안서를 낸 이유 — BOM 등록 자동화 챌린지 1화


아무도 내 업무 아니라는데, 8년째 우리가 하고 있다

회사에서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 있다.

제품 코드 생성, 포장재 소요량 계산, 그리고 그걸 SAP에 BOM으로 엮는 작업.

연구소에 물어보면 “저희 업무 아닌데요.” 품질팀에 물어보면 “생산 쪽 아닌가요?” 생산팀에 물어보면 “그건 구매에서 하지 않나요?”

결국 구매팀이 한다. 8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


BOM이 뭔지 모르는 분을 위해 한 줄 설명

BOM은 Bill of Materials의 약자로, 제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어떤 자재가 몇 개 필요한지를 시스템에 등록해둔 자재명세서다.

예를 들어 건강기능식품 하나를 포장한다고 하면 — 단상자, 속포장지, 완충재, 방습제, 검수용 라벨, 바코드 스티커 같은 포장재들이 전부 BOM에 연결되어 있어야 생산이 돌아간다. 이게 없으면 자재 발주도 못 하고, 생산 계획도 세울 수 없다.


하루 10건, 한 건당 얼마나 걸리나

내가 BOM 등록에 쓰는 시간을 솔직하게 따져봤다.

평균적으로 하루 약 10건. 단순한 건은 10~15분이지만, 조금만 복잡해지면 30분을 훌쩍 넘긴다.

복잡해지는 이유가 있다.

우리 회사는 생산 플랜트가 여럿인데, 같은 제품이라도 어느 라인에서 만드느냐에 따라 쓰는 자재가 다르다.

자동화 라인에서는 방습제나 완충재를 롤 타입으로 쓰고, 수동 포장 라인에서는 낱개형 수동 타입을 쓴다. 검수용 라벨도 마찬가지다 — 생산 설비의 풀림 방향에 따라 적합한 규격이 달라진다. 이 차이를 BOM에 플랜트별로 따로 엮어줘야 한다.

거기에 더해 BOM 등록 시에는 어느 생산 시점(로트)부터 해당 자재를 적용할지도 지정해야 한다. 같은 제품인데 이번 로트부터 용기 사양이 바뀐다면, 바뀐 사양에 맞는 포장재 BOM을 새로 등록하고 적용 시점을 정확히 입력해야 한다.

이걸 하루에 10번 반복한다.


왜 지금껏 자동화가 안 됐을까

솔직히 오래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BOM에 들어가는 정보 대부분은 어딘가에 이미 존재한다. 신제품 개발이 시작되면 사내 생산관리 시스템과 생산의뢰서에 제품 코드, 생산 플랜트, 적용 로트, 사용 자재 관련 정보가 공통 관리번호로 묶여서 들어온다.

나는 그 정보를 보고, SAP에 다시 손으로 옮긴다.

이미 있는 데이터를, 형식만 바꿔서 다시 입력하는 것이다.

이게 자동화가 안 된 이유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 누구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풀어야 할 비효율’로 정의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다들 그냥 “구매팀이 원래 하는 일”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AI 자동화 제안서를 냈다

회사에서 AI 업무 챌린지를 공모했다. 업무 자동화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검토 후 실제 구현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BOM 등록 자동화를 제안했다.

핵심 논리는 이렇다. 사내 생산관리 시스템과 생산의뢰서에 공통으로 들어오는 관리번호를 키값으로 삼아, 거기서 BOM 등록에 필요한 정보를 자동으로 끌어와 SAP에 입력하는 구조다. 플랜트 조건이나 적용 로트 같은 분기 로직도 기존 데이터에 이미 담겨 있으니, 매칭 규칙만 잘 설계하면 충분히 자동화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제안서는 이미 제출했다. 지금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다룰 것

솔직히 말하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통과될 수도 있고, 탈락할 수도 있다. 구현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꼬일 수도 있다. AI가 내 업무를 얼마나 실제로 바꿔놓을지도 아직 모른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AI가 구매담당자 업무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내가 직접 겪으면서 기록하는 도전기다.

다음 화에서는 사내 챌린지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심사 과정에서 어떤 피드백이 나오는지를 이어서 적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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