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단지 16곳에 점수를 매겼더니, 점수와 가격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임장을 다니다 보면 비교가 안 된다

노원과 중랑을 걸으면서 단지를 하나씩 봤다. 그런데 세 번째 단지쯤 가니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중 뭐가 나은지 말할 수가 없었다.

한 곳은 역이 가깝고 한 곳은 조용하다. 한 곳은 대단지고 한 곳은 상가가 좋다. 머릿속에서 저울질이 안 됐다.

그래서 아파트 입지 점수를 매기기로 했다. 항목을 정하고 배점을 붙여서, 모든 후보를 같은 자로 재기로 한 것이다.

배점을 이렇게 잡았다

항목배점
강남 접근성45시장이 실제로 값을 매기는 축
교통40지하철 노선 등급 + 역까지 도보
환경15병원·상가·공원

학군은 뺐다. 학군의 하방경직성은 30~40평대에서 작동하는데 나는 전용 59㎡ 이하를 본다. 소형에 학군 가점을 주면 없는 강점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강남 접근성에 45점을 준 건 계산이 있었다. 강남권 업무지구 종사자가 170만 명이다. 내가 편한 게 아니라 다수가 원하는 것이 가격을 만든다면, 배점의 절반 가까이를 여기 줘야 맞다고 봤다.

이 표로 노원·중랑 후보 16곳을 채점했다.

매기고 나서 숫자를 보다가 멈췄다

아파트 입지 점수와 중위 실거래가 비교 - 후보 단지 16곳
점수 순으로 세운 16곳. 오른쪽 가격 열이 점수를 따라가지 않는다.

점수와 실거래가를 나란히 놓고 상관계수를 계산했다.

−0.09.

사실상 무상관이다. 점수 상위 5곳 평균이 4.62억, 하위 5곳 평균이 4.68억이었다. 오히려 하위권이 조금 더 비쌌다.

가장 선명한 건 최하위 두 곳이었다. 40점 D등급이 5.10억, 51점 C등급이 5.18억. 16곳 중 제일 비싼 두 곳이 점수로는 바닥이었다.

채점표가 가격을 하나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전에, 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숫자를 의심하기 전에 표를 먼저 의심해봤다. 그랬더니 바로 나왔다.

같은 총점을 받은 두 아파트의 항목별 입지 점수 비교
총점은 똑같이 83점인데, 한 곳은 45점짜리 항목을 아예 채점하지 못한 상태였다.

83점 A를 받은 단지가 두 곳인데, 안을 열어보니 완전히 다른 집이었다.

한 곳은 강남 접근성에서 45점 만점을 받고 83점이 됐다. 다른 한 곳은 강남 접근성을 아직 실측하지 못해서, 나머지 55점 만점으로 채점한 뒤 100점으로 환산해 83점이 됐다.

배점이 가장 큰 항목이 빠진 점수와, 그 항목에서 만점을 받은 점수가 같은 표에 같은 등급으로 나란히 있었다. 비교가 될 리 없다.

16곳 중 두 곳이 이 상태였다. 채점표를 만들면 채점표를 관리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그래도 상관은 여전히 없었다

두 곳을 빼고 다시 봐도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점수는 가격을 설명하지 못했다.

한참 보다가 이유를 알았다. 내 점수표는 「내가 살기 좋은가」를 재고 있었다.

역까지 몇 분인지, 병원이 가까운지, 공원이 있는지. 전부 사는 사람의 편의다. 그런데 가격은 그걸로 정해지지 않는다. 다수가 원하느냐로 정해진다.

두 개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 차이가 −0.09로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점수표가 쓸모없진 않았다

버릴까 하다가 안 버렸다. 쓰임이 다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가격을 맞히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포기하는지 보여주는 도구다.

예를 들어 40점짜리 5.10억과 83점짜리 4.95억이 나란히 있으면, 이제 질문이 분명해진다. “15만원 더 주고 점수 43점을 버릴 이유가 있나?” 이유가 있으면 사는 거고 없으면 안 사는 거다. 점수가 없을 때는 이 질문 자체를 못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배웠다. 점수가 낮은데 비싼 집에는 내 표에 없는 항목이 들어 있다. 재건축 기대감이든, 내가 안 세어본 무언가든. 점수와 가격이 벌어지는 지점이 오히려 내가 뭘 놓쳤는지 알려주는 신호였다.

그래서 바꾼 것

첫째, 미완성 점수는 등급을 매기지 않기로 했다. 항목이 빠진 채로 환산하면 숫자가 거짓말을 한다. 실측 전이면 「미완」으로만 표시한다.

둘째, 점수 순위와 가격 순위를 같이 본다. 두 순위가 크게 어긋나는 단지를 먼저 파본다. 거기에 내가 모르는 게 있다.

셋째, 강남 접근성 실측을 마저 한다. 배점 45점짜리를 두 곳이나 비워둔 채로 표를 쓰고 있었다.

점수표는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정확하게 만들어줬다. 지금 단계에서는 그게 더 필요한 것 같다.

정리

  • 후보 단지 16곳아파트 입지 점수를 매겼다. 강남 접근성 45 · 교통 40 · 환경 15, 학군은 제외.
  • 점수와 중위 실거래가의 상관계수는 −0.09. 상위 5곳 평균 4.62억, 하위 5곳 평균 4.68억으로 사실상 무관했다.
  • 채점표 자체에 결함이 있었다. 45점짜리 항목을 실측 못 한 두 곳이 나머지 항목만으로 환산돼 A등급에 올라 있었다.
  • 점수표는 「내가 살기 좋은가」를 재는데, 가격은 「다수가 원하는가」로 정해진다. 그 차이가 −0.09였다.
  • 그래도 버리지 않았다. 점수와 가격이 벌어지는 지점이 내가 놓친 걸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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